밀양의 文化(culture) 관광 - 양반의 고장 밀양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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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1 08:1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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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로 개칭하였다. 2층 몸돌은
다. 탑신부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따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따 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식은 없다. 탑 앞에는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있으나 이 곳은 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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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무열왕 원년(654) 원효대사가 지금의 극락암 자리에 초암을 짓고 수도하는 어느날 아침 재약산 쪽을 바라보니 대밭 속에서 오색서운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가람을 짓고 이름을 죽림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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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표충사삼층석탑
표충사에는 국보, 보물, 중요 민속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따 청동함은향완(국보 제75호),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중요민속 제29호),표충사 석등(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 표충서원(경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을 비롯한 대광전, 만일루, 팔상전, 명부전 등 법당건물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따
고려 충렬왕 12년(1286)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국사가 1,000여명의 대중을 맞아 불법을 중흥하여 동방 제일선찰이 되었으며,1290년(충렬왕16) 천희국사가 선풍을 관장하니 일국의 명찰이라 일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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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표충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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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순서
조선 영조 때(1742년) 사명대사 5대 법손이 당대의 명재상과 명유를 찾아다니며 비문과 글씨를 얻어 경주산의 검은 대리석에 사명대사의 한평생 행적과 임란시 구국의 충렬을 찬양한 내용,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공적과 사적을 새긴 비각이다. 국가의 큰 사건이 있을때를 전후하여 땀방울이 맺혀 구슬땀 처럼 흐르는 신비로운 현상을 보이고 있어, 사후에도 나라를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으며, 일명 「땀흘리는 비석」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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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대홍원전 앞에 세워진 3층석탑이다. 그 후 흥덕왕 4년(829)에는 인도스님 황면선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3개를 모시고 동방의 수려한 강산을 찾던 중 이곳에 들러 석탑을 세우고 진신사리를 봉안하였고, 신라 진성여왕(889)때에는 보우국사가 승려 500명을 모아 선풍을 크게 일으켜 동방 제2선찰이 되었다.
설명
그리고 조선 현종때(1839) 월파 천유화상이 임진왜란을 맞아 승병을 일으켜 큰 공훈을 세운 서산,사명,기허 3대선사를 모신 표충사를 이곳으로 이건하면서 절 이름도 영정사에서 표충사로 바뀌었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로 고쳤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