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가학과 사상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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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9-0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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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는 나면서부터 중조부의 만년송을 보면서 자랐었고…(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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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가학과 사상형성*
퇴계의 부친이 솔을 심어 송림을 조성하였고 숙부는 고향을 생각하면서 선대를 추모하는 뜻으로 그 곁에 집을 짓고 살면서 송재라 호한 깊은 뜻을 알... , 퇴계의 가학과 사상형성*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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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사실은 퇴계가의 애송 모절이 퇴계의 증조부인 이정으로부터 발원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재임중 약산성을 개광할 때 부사 조비형을 도와 축성을 감독하고 공을 쌓았다.
노송정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퇴계의 성장력과 함께 식송모절의 근저는 더 깊음을 이해하게 된다된다. 이 노송나무는 1850년경(종손 이찬화 재세시)에 고사하였으나, 후손이 정성을 쏟아 보호하여 장송취음을 이루었고, 14대를 이어 추모종송하는 전통을 가르쳤다. 퇴계의 조부는 그 부친으로부터 만년송 한 그루를 받아 퇴계가 태어난 고택 즉 오늘의 노송정 종택에 심었다. 한 그루는 주촌 본택에 심었고(현재 경류정에 보존되고 있으며 100여인이 나무 아래 앉을 수 있는 기품있는 뚝향나무, 일명 만년송), 한 그루는 선산부 재임중에 분재하여 완상하다가 이임시에 서군 박근손에게 주어 땅에 심게 하였으며(임진왜란 <1592∼1598>을 겪으면서 고사하고 불전), 한 그루를 계자인 이계양에게 주어서 온혜에 개기할 때 뜰에 심도록 하였다.
퇴계 조부는 노송정이라 호하였거니와(후손이 종택 당호를 노송정으로 봉천하고 인하여 이계양의 호로 삼았다는 설도 있음) 후손들은 송재와 퇴계의 뜻을 받들고 세세면면 조업을 숭봉하며 세한송백지후조의 절개를 가르치는 가학으로 정착한 것이다. 그 공적으로 선산부사로 전근하였는데 떠날 때 약산송 삼주를 가지고 와서 본택과 사위 및 계자에게 각각 나눠 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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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부친이 솔을 심어 송림을 조성하였고 숙부는 고향을 생각하면서 선대를 추모하는 뜻으로 그 곁에 집을 짓고 살면서 송재라 호한 깊은 뜻을 알...
퇴계의 부친이 솔을 심어 송림을 조성하였고 숙부는 고향을 생각하면서 선대를 추모하는 뜻으로 그 곁에 집을 짓고 살면서 송재라 호한 깊은 뜻을 알 수가 있다 퇴계가의 부친대에 이미 애송 모절하고 사향추선하는 가도가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부친이 아니고 조부의 수식이라 하더라도 그 연원은 분명하다.
그런데 소나무를 사랑하는 근저는 또 한 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퇴계 증조부 이정은 선산부사를 역임하였는데 전임전에는 영변판관으로 근무하였다.


